작가가 직접 겪은 우크라이나 내전의 참상
러시아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불가코프는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키예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을 모두 그곳에서 보낸 우크라이나 출신의 작가다. 이 책은 특히 작가가 직접 참전해 겪은 우크라이나 내전의 참상을 담은 작품을 수록했다. 불가코프는 키이우(키예프)의과대학 재학 시절 징병돼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이후 우크라이나 내전이 발발하자 또다시 징병되며 전쟁의 포화를 또 한번 온몸으로 겪었다. <3일 밤에>와 <제가 죽였습니다>가 당시 작가의 경험을 생생히 담은 작품이다. <3일 밤에> 속 남성들은 수시로 강제 징병되고 남은 가족들은 남편, 형제, 아들을 잃은 슬픔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 도시 밖에서는 군인들이 활개 치며 사람을 때려죽인다. 한편, 도시 내부도 불침번을 서던 민간인이 살해당하는 등 안전하지 않다. <제가 죽였습니다>에서는 도시 밖 군인들이 벌인 잔혹한 행위들이 의사 야시빈의 목소리를 통해 좀 더 상세히 묘사된다. 의사 출신인 불가코프가 마치 직접 독자들에게 전쟁의 참상을 증언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3일 밤에>와 <제가 죽였습니다> 두 작품은 이후 불가코프의 대표작인 ≪백위군≫의 뿌리가 되었다.
<중국인 이야기>는 원하지도 않은 전쟁에 참전하게 되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겪는 한 개인의 모습을 절실하게 그렸다. 주인공 센진포는 외국인임에도 러시아군에 징병되어 결국 전쟁터에서 최후를 맞는다. 전쟁에서 공을 세우는 그의 모습은 일견 영웅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러시아의 정치 상황을 제대로 알기는커녕 러시아어조차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외국인이 남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징병되어 고국을 그리워하다 끝끝내 전사하는 모습은 우크라이나 내전에서 죽어 간 젊은이들, 그리고 군의관으로 징병되어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불가코프 자신의 운명과 다르지 않다.
볼셰비키 혁명 이후의 소비에트 러시아
<칸의 불꽃>, <심령술 모임>, <모스크바의 벽?전초기지에서>, <찬송가>, <채권 06조 0660243번?실제 사건>, <말하는 개>, <이집트 미라?노조원의 이야기>, <망자의 모험>은 혁명 이후 소비에트 러시아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다. 모두가 평등한 완전무결한 세상을 표방했던 소비에트 러시아였지만 실상은 수많은 문제점과 모순을 내포하고 있었다. 불가코프는 이러한 소비에트 러시아의 어두운 단면들을 유머러스하면서도 날카롭게 묘사한다.<칸의 불꽃>에서 귀족의 저택이 박물관이 되고 천박한 이들이 저택 안을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며 옛 주인들을 모욕하는데, 이는 혁명 이전의 것들은 귀족적이고 부르주아적이라는 죄명으로 타도의 대상이 된 세태를 반영한다. <심령술 모임>은 은밀한 모임이 경찰에게 발각되어 참가자들이 체포되는 이야기로, 우스꽝스럽게 전개되는 가운데서도 비밀경찰이라는 소재를 드러냄으로써 당시 러시아의 강압적 분위기를 생생히 그린다. 중편 <소맷동에 쓴 수기>는 불가코프의 작가로서의 삶을 담은 자전적 수기로 불가코프 개인의 삶뿐 아니라 당시 러시아 문단의 분위기도 엿볼 수 있다.